2014년 1월 27일 월요일

진정한 성교육

*퍼 온 글임


걘적 소감으론 머랄까...`교과서에 실려야 할 명문`이람 오바릴려나 ㅎ

촘 길지만 근래에 읽은 그 어떤 글보다 교육(?)적 차원에서 추천하고픔

긴말 필요있나 일단 읽고보자 대략 별 다섯개 짜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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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투를 가르치는 사람은 본능을 죽이는 훈련을 집요할 정도로 시킨다. 그 중 대표적인 게 눈앞에 무엇이 날아오든 피하거나 눈을 깜박이지 않고 똑바로 응시하는 것이다. 사실 바람직한 본능이다. 안구는 중요한 만큼이나 약하고, 재생되기도 힘들기에 무조건 보호하는 게 좋다. 날아오는 주먹을 뜬 눈으로 치켜 보는 건 피겨스케이팅만큼이나 어색한 일이다. 인간은 어쩌다 두 쇳날 위에서 춤을 추는 일로 경쟁을 하게 되었을까.


권투가 그 무감정한 시선을 통해 가르치는 것은 투쟁심이다. 상대를 응시하는 것. 나를 쳐부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상대를 아무렇지 않게 쳐다보는 것. 나는 투쟁심이 없었다. 내가 살기 위해 이겨야 한다는 절박함이 없었던 모양이다.


시합 때였다. 관중은 없었다. 코치의 고함소리가 텅빈 객석에 메아리치는 경기장에서 나는 마라톤 선수들이 느낀다는 ‘러너스 하이’를 경험했다. 맹목적으로 뛰다 보면 느껴진다는 맹목적인 도취.  


나는 투쟁의 한복판에 있지 않았다. 그와 싸우는 내가 영화 속 등장인물처럼 멀게 느껴졌다. 나는 기계적으로 스탭을 밟고 팔을 뻗었다. 거기에 만족했던 것 같다. 3라운드 중반 쯤이었다. 아팠고 힘들었다. 어느 순간 그를 쳐부순다는 욕구보다 끊임없이 움직이는, 스스로를 연소시키는 가학적 쾌감에 빠져들었다. 그 기분에 도취되어 이대로 죽어도 좋다고 생각하는 순간, 정말로 죽었다. 기억이 끊겼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의 끊어 치는 주먹에 턱이 돌아갔다. 나는 고목나무처럼 앞으로 쓰러졌다. 심판은 열까지 셀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나는 KO 당했다. 정신을 차리고 나서 가장 먼저 한 일은 구토였다. 참을 수 없는 멀미가 밀려와 갈빗대가 떨렸다. 입으로 손을 막았지만 손가락 사이로 맑은 토사물이 뿜어져 나왔다.


그러고도 별다른 감정은 느끼지 못했다. 반드시 설욕하겠다는 마음도 일지 않았고, 1회 누적된 승수를 만회하고 싶지도 않았다. 나는 내 삶을 그렇게 보고 있었다. 내 자신과 동떨어져 있었다. 경치를 감상하듯 스스로를 구경했다.


경기 다음날이 되자 얼굴에 쌓인 매독이 푸르딩딩한 색으로 올라오기 시작했다. 이틀 째가 되자 눈두덩과 광대뼈가 반들 반들 부풀어 오른 얼굴은 남색과 보라색으로 뒤덮였다. 두 색은 내 얼굴을 두고 치열한 전쟁을 벌이는 것 같았다.


나는 치열하지 않았다. 세상이 좆같이 보였다. 군 시절 나를 영창 보낸 장교를 길거리에서 만나는 상상을 하곤 했다. 그 새끼의 어금니 뿌리가 뽑히는 그 느낌을 손등 관절로 느끼면 얼마나 짜릿할까, 그 짜릿함은 전기처럼 내 팔꿈치를 지나 어깨까지 전해져 오겠지... 그 따위 생각을 하고 살았다.




집안이 망한 후 동두천으로 흘러 들어온 인생은 오만해졌다. 스스로와 세상을 분리했다. 세상은 엿같은 거라고 함부로 단정했다. 나는 그런 확신을 해도 될 만큼 고생하지 않았음에도. 세상을 좆같이 보려면 잘나지 않아도 된다. 대신 그만한 품위는 있어야 한다. 나에겐 그 품위가 없었다.


시퍼런 얼굴로 빨간색 씨티백을 몰고 미군부대 담벼락을 오른쪽으로 훑었다. 왼쪽으로는 레고로 만든 듯한 조그만 마을이 펼쳐지는 곳이다. 마을은 정말 엽기적으로 작다. 미군들의 사복을 세탁하고, 국적불명의 햄버거를 만들어 팔고, 몇몇의 여자가 그들에게 몸을 파는 그런 동네. 그것도 사거리라면, 사거리에는 주말 저녁마다 미국 남부 컨트리송이 흘러나오는 댄스홀이 있다. 예전에 조용한 한옥이었을 텍사스 댄스홀의 지붕은 슬레이트였다.


언젠가는 누런 개와 배꼽을 내민 검은 더벅머리 아이가 뛰노는 흙마당이었을 지도 모르는 댄스홀엔 영어 낙서와 진급하면서 버린 미군 계급장 따위로 뒤범벅이었다. 그 자체가 일종의 인테리어였다. 거기서 미군들이 플라스틱 바가지에 담긴 저질 칵테일을 요란한 색의 빨대로 빨아 대며 춤을 추는 모습과, 업소 옆을 지키는 오래된 소나무를 번갈아 보곤 했다.


소나무는 외로워 보였다. 줄기는 옹이를 만날 때마다 굽이져 뻗었다. 반 쯤 벗겨진 껍질은 짙은 갈색이었다. 헐벗은 부분은 붉었다. 솔잎은 푸르고 힘찼다. 산수화에 나와도 될 법했다. 하지만 소나무는 모욕 당하고 있는 듯했다. 바로 옆, 락카로 어설프게 그린 핀업걸 때문에, 컨트리 음악 때문에, 둥치에 노상방뇨를 하는 미군 병사 때문에 소나무는 산수화의 세계를 영영 잃어버린 듯했다.


그 소나무에 몸을 기댄다. 왁자지껄한 미군들의 탭댄스를 보다가, 고개를 돌려 소나무 가지에 걸린 달을 보면 그 자리에서 나는 수백 년 세월과 태평양을 번갈아 건넌다. 소나무의 처지에 가슴 아팠지만 나는 그 기분이 좋았다. 소나무의 외로움을 이해하는 건 나 뿐인 듯 싶었다. 나는 거기서 특권 의식을 느꼈다. 산수화의 세계를 모르는 양키 새끼들에게, 그런 양키들에게 술과 몸을 파는 누렁이들에게, 이런 세상에서 좋다고 살아가는 남녀노소를 마음껏 무시할 핑계를 찾았다.


정말로 한심한 삶을 살던 중이었다.

누군가 내 어깨를 쳤다. 희멀건 미군이었다. 튼튼한 어깨 만큼이나 지방 덩어리를 배에 붙인 그는 눈을 희둥그렇게 뜨고 내게 물었다.

보이, 아 유 오케이?

오케이라고 대답했다. ‘보이’가 아니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왓츠 롱 위드 유어 페이스?



오케이를 몇 번 연발했는지 모르겠다. 기어이 포기하지 않고 ‘캔 아이 헬프 유?’라고 물었을 때는 어쩔 수 없이 웃었다. 이렇게 웃어도 될 만큼 괜찮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미군은 내 얼굴을 귀엽다는 듯이, 아니면 불쌍하다는 듯이 손바닥으로 툭툭 치고는 짝집을 향해 몸을 돌렸다. 순간 후덥지근한 버터 냄새가 훅 끼쳐왔다. 꼭지가 돌았다.


그를 따라 짝집에 들어갔다. 미국의 한 도시 이름을 딴 간판을 지나쳤다. 야한 차림의 필리핀 여자와 인사를 나누려는 그의 얼굴에 주먹을 쏟아부었다. 그가 빨리 쓰려지지 않아서 더 화가 났던 것 같다. 다리를 걸어 억지로 넘어뜨린 후 배를 깔고 앉았다. 그러나 더 때릴 기회는 없었다. 어느 순간 처음 보는 미군 둘이 내 어깨를 양 쪽에서 잡고 날 일으켜 세웠다. 흰 지방은 코피를 훔치며 일어섰다. 알 수 없는 욕지거리가 들렸다. 이제는 내가 당할 차례였다.


욕을 해 봤자 흰 지방이 알아들을 리가 없었다. 별 미친 놈 다 보겠다는 듯 고개를 가로 젓는 그 얼굴에 침을 뱉었다. 이젠 진짜 맞을 참이었다. 그때 파마 머리를 한 가무잡잡한 여자가 어디선가 튀어나오더니 나를 세게 끌어안았다. 그녀가 방패가 되어 준 덕분에 나는 맞지 않을 수 있었다.


그녀는 내 허리를 안은 채 미군에게 애원하듯 말했다. 지금도 그 문장을 기억한다. “코리안 아르바이트 스튜던트, 아르바이트 스튜던트...” 그게 내 얼굴의 멍과, 미군을 때린 동기와 무슨 상관이 있는지 아직도 모르겠다. 어쨌든 미군들은 그녀와 친분이 있었다. 그녀에겐 함부로 하지 말아야 한다는 암묵적인 합의가 있는 듯했다.


나는 멀찌감치 서서 되지 않는 영어를 반복하는 그녀와, 고객센터에 따지러 온 소비자처럼 항변하는 미군들을 보게 되었다. 미군들은 차례로 어깨를 으쓱 하더니 궁시렁거며 업소를 나섰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그녀는 문 밖으로 쏜살같이 튀어나갔다. 미군들이 소나무 옆에 대 놓은 씨티백을 발로 차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는 씨티백이 소중한 아이나 되는 양, 주저앉듯이 몸을 낮춰 낡은 기계를 껴안았다. 미군들은 부대 바로 옆에서 값싸게 성욕을 해결해주는 여왕벌을 존중해야겠기에, 더 이상 씨티백을 괴롭히지 않았다. 백미러 하나는 나갔지만.



그렇다, 그녀는 마담이었다. 나이는 서른 초반. 나보다 아홉 살 많았다. 처음에 날 앉혀 놓고 찬 물수건을 준비해 온 그녀는 자초지종을 듣고 나자 돌변했다. 눈물이 그렁그렁하던 얼굴은 순식간에 야멸찬 장사꾼의 그것이 되어 있었다. 하루 매상 망친 거 어떻게 책임질 거냐, 이거 돈으로밖에 해결 안 된다, 너 지금 얼마나 있냐...


이만 삼천원을 내놓고 그 위에 동전을 쩔그럭 쏟았다. 아마 팔백원쯤 됐던 것 같다. 그녀는 기가 막힌 듯 비웃는 표정으로 담배를 물었다. 엉덩이 살에 터질 듯한 미니스커트를 입은 필리핀 아가씨가 다가와 테이블을 탁 치고 갔다. 날 압박하려는 심산으로 보였다.


가게엔 마담인 그녀 말고 두 명의 필리핀 아가씨가 있었다. 지나치게 숫기가 많은 한국 아가씨도 하나 있었다. 나는 마담을 마주 보고 불만스레 팔짱을 낀 필리핀 아가씨들에게 둘러쌓였다. 어린 한국 아가씨는 쪽방의 장지문을 열고 텅민 눈으로 날 쳐다보았다. 내게 화가 난 건지 동정하는 건지 당췌 알 수가 없었다.


마담은 돈 챙겨서 꺼지라고 했다. 나는 됐다고 했다. 이만 삼천원 어치 술 가져오라고 했다. 나는 바닥에 드러누울 기세였다. 한 마디로 진상이었기 때문에 그녀는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홀... 홀이라봐야 지극히 좁은 테이블 네 개에 불과하지만... 나는 홀에 앉을 자격이 없었는지 쪽방에 앉게 되었다. 은쟁반에 맥주와 소주, 오징어를 내왔다.


물었다. 양키들도 마른 오징어를 먹냐고. 먹지 않는다고 했다. 마담은 얼른 쳐먹고 가라는 식으로 날 내버려두고는 경대에 앉아 화장을 했다. 나는 진상이었기 때문에 거기서 만족할 수 없었다. 아니 짝집에 와서 술을 시켰으면 대작을 해 줘야 할 거 아냐. 어디서 사람 앉혀 놓고 화장질이야. 이게 뭐 하는 거야 지금. 그런 말을 했다.


마담은 묵묵히 화장을 했다. 가무잡잡한 얼굴에 두터운 분칠을 입히고 또 입히는 모습이 흡사 게이샤가 분장하는 것 같았다. 그러다가 내가 쟁반을 발로 차 엎자 그녀는 드디어 폭발했다. 플라스틱 빗을 내 얼굴에 던지더니(운 좋게 피했다) 벌떡 일어나 내 가슴을 발로 걷어찼다. 작달막한 발이 무척이나 아팠다.

아 씨발, 아 잠깐, 가만 있어봐, 돌았나 씨발년이, 아 진짜 그만하라고...

뒤로 넘어가면서 그렇게 내뱉어도 소용 없었다. 그녀는 쓰러진 내 몸을 야무지게 밟았다. 나도 무작정 맞고 있을 생각은 없어서 갈빗대를 쑤지는 발모가지를 잡아 제끼고는 일어나 앉았다. 그러기가 무섭게 따귀가 날아들었다.

미쳤냐 이 개새끼야?



그 말을 듣자 마자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엉엉 울었다. 참을 수 없을 만큼 한심해 보인다는 거 안다. 근데 그랬다. 나도 제어할 수가 없었다. 그녀는 나를 미친놈 보듯 보더니 밖으로 나섰다. 홀 쪽이 아니라 반대쪽이었다. 거기엔 시멘트를 바른 작은-정말이지 아주 작았다-마당이 하나 있었고, 그 마당을 세 개의 장지문이 감싸고 있었다.


나는 혼자서 한동안 흐느끼고는, 그저 앉아 있었다. 장사는 나 때문에 안 되기는커녕 잘만 됐다. 미군들이 아가씨들과 노닥거리는 소리가 끊임없이 들렸다. “해피”란 소리가 유난히 많이 들렸다. 구석진 통로를 통해 뒷뜰 쪽방으로 미군과 아가씨가 가고, 잠시 후에 미군이 나오고, 또 잠시 후에 아가씨가 나와 홀에 앉고...


그 채로 새벽까지 있었다. 영업이 끝나고 불이 꺼지고, 쪽방에 들어온 마담은 나를 구해줄 때처럼 자비로운 얼굴로 변해 있었다. 괜찮니? 괜찮다고 했다. 아팠니? 안 아팠다고 했다. 그녀가 미안하다고 해서 나도 미안하다고 했다. 남자는 여자 앞에서 우는 게 아니라고 해서 알았다고 했다. 자기 때문에 울었냐고 물어서 그건 아닌 것 같다고 했다. 왜 안 가냐고 물어서 가나 안 가나 그게 그거라고 했다. 자취방은 동두천 구석 민박집이었다. 거지같은 곳이었고 나도 거지였고 거기서 자나 밖에서 구르나 거지꼴이긴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허리춤에서 오토바이 키를 꺼내 내게 주었다. 술 취한 미군들이 가끔 주민들의 차나 오토바이를 타고 어디론가 질주해 사라지곤 하니  키를 꼭 챙기라고 했다. 그녀는 내가 사내가 아니라 가구나 된 듯 옷을 훌훌 벗고 츄리닝으로 갈아입었다. 내가 전혀 위협이 못 되는 듯 했다. 기억하라 육두의 남성 전사들이여. 남자의 눈물은 가끔 이런 선물을 준다는 것을.


나는 그 몸을 보았다. 이중적이었다. 가무잡잡한 피부는 건강하면서 지쳐 있었다. 그 속에 야무진 근육을 숨기고 있지만 쳐지기 시작했다. 얼굴은 촌스러우면서 도회적이었다. 아마도 큰 눈과 약간 튀어나온 입술의 조합 탓이었을 것이다. 몸은 날씬한 걸 넘어서 ‘얇았다.’ 뼈가 불거져 나온 부분은 황소가 밭을 가는 시골을 연상케 했다. 관절 사이마다 단단히 붙은 살은 탁구선수 같았다. 왜 숱한 운동 중에 탁구인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탁구가 생각났다.


손바닥과 발바닥은 피부보다 하얬다. 매니큐어와 패디큐어는 요란했다. 거기에 발은 못생겨서 손발만 놓고 보면 꽤나 천박했다. 하지만 그와 어울리지 않게 암팡진 배꼽엔 말할 수 없는 생명력이 있었다. 그녀는 근사했다.


오징어 한 마리는 칠천원이라고 했다. 소주 한 병 삼천원. 맥주 두 병 각 사천원. 만 구천원어치니 아직 사천 팔백원어치가 남았다고 주장했다.

“김이 사천 팔백원짜리야.”

아, 그 짝퉁 양반김? 너무한 거 아니냐고 따졌다. 그거 서비스 아니었냐고 따졌다. 정 원한다면 팔백원 밖에 줄 수 없으니, 사천원어치 내놓으라고 했다. 그때 그녀는 웃었다.

아가씨 앉혔잖아, 그걸로 부족해? 그녀가 따졌다.
화장이나 했으면서, 앉히긴 뭘 앉아, 당신이 앉았지. 마주 보지 않고 앉은 건 취소. 그리고 당신이 어딜 봐서 아가씨야? 내가 반박했다.


그 녀는 소주 한 병을 가져오더니 조선시대 풍으로 조신하게 앉았다. 맨발에 츄리닝 차림인 주제에... 얼굴에 장난기가 어려 있었다. 그녀는 작정한 듯 두 손으로 술을 따랐다. 원샷을 하자 말했다. 소주 삼천원, 내 접대 천 원. 이제 만족해?


만족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녀는 자신이 부족하냐고 했다. 그렇지 않았다. 분에 넘쳤다. 나는 그녀가 멋지다고 고백했다. 멋진 여자가 술을 따라주어서 과분하다고 했다. 거짓말하지 말라고 해서 진심이라고 했다. 자신이 어디가 어떻게 예쁜지 묻길래 정성을 다해 설명했다. 가무잡잡한 얼굴도 빨개지는 건 들킬 수 없다는 걸 알게 됐다.


소주 한 병을 비우고, 미군이 먹다 남긴 조니워커 반 병을 비우고, 맥주 두 병을 더 마셨다. 2초면 가로지르는 시멘트 마당을 지나 그녀의 방으로 함께 갔다. 결코 적극적이지 않았지만 결코 방어적이지도 않은 그녀의 몸을 탐했다. 억세면서도 연약한 몸을 부서질 듯 안다가 만지고, 핥고, 다시 안기를 반복했다. 그 살 냄새를 아직도 기억한다.


그녀의 새카만 음모가 젖어들었음을 기억한다. 거웃 끝에 그녀의 몸에서 나온 액체가 방울 질 때면 내 배냇나루도 함께 젖곤 했다. 미지근했다가 금세 차가워지는 그 느낌을 기억한다. 핑크색 발톱 다섯 개가 내 어깨 위에서 오므라들던 모습을 기억한다. 발톱들은 합주를 하듯 함께 떨리고, 함께 쳐지고, 그러면 그녀의 몸도 쳐졌다.

그 괴악한 첫 날 밤 그녀는 말했다. 존댓말 하는 남자는 멋 없다고. 그래서 나는 멋 없는 남자가 되지 않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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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자에 없는 기둥서방이 됐다. 나는 안심했다. 왜냐하면 기둥서방이 된다는 것은, 기둥서방이 된다는 거니까. 다시 말해 그게 뭐든 무언가가 된다는 건, 목표 없이 사는 인생을 안심 시키는 힘이 있다.  


그렇다면 기둥서방의 역할은 뭐였을까. 없다. 최소한 나는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물론 귀찮은 심부름 거리나 힘쓸 일이 생기면 동원되곤 했지만 그게 짝집 경영에 도움이 되었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그녀가 일하는 가게는 주인이 따로 있다고 했다. 나는 주인을 본 적이 없다. 주인 역시 한때 미군을 상대로 윤락을 하던 여인이라고 했다. 필리핀 아가씨들의 고향은 조국인 필리핀에서는 아주 먼 곳이라고 했다. 동두천에서 두 사람은 한 업소에서 일했고 한 방을 썼으며, 자매라고 해도 될 정도로 친했다. 아니 자매보다 더. 방이 하나 뿐이라 돌아가면서 손님을 받아야 했다. 한 명이 미군과 방에 있으면 다른 한 명은 홀에 있어야 했다.


세상 만사에 관심이 없어 뵈는 한국 아가씨는 한 마디로 무기력 그 자체였는데, 그런데도 몇 명의 단골이 있었다. 그녀는... 그녀는, 그러니까 마담은 몸을 팔지 안았다. 대신 나에게 점점 집중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중국집 배달 일을 때려치우고 방도 뺐다. 그녀의 방에 눌러 앉았다. 경제적으로 보면 좋은 선택은 아니었다. 그 중국집의 음식은 맛이 더럽게 없었다. 그래서 주문이 많지 않았는데, 절묘하게도 딱 배달부가 필요한 만큼의 주문은 있었다. 아마 중국 음식은 다 똑같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때문에 연명하는 집이었다. 거기다 주인 부부의 성품도 좋아서 일은 없어도 월급은 친절했다.


한 마디로 최고의 직장이었지만, 짝집에서 숙식이 해결되는 이상 더 붙어 있을 이유가 없었다. 모아둔 약간의 돈과 방 뺀 돈으로 중고 오토바이를 샀다. 그래봐야 125cc 짜리였지만 나한텐 대단한 사치였다. 그때는 인정하지 않았지만, 마음으로는 그녀에게 의존하려고 했던 거다.


세상과 분리되고 싶었고, 거기는 좋은 도피처였다. 처음에 날 경계하던 필리핀 아가씨들은 얼마 안 되는 짐을 가지고 눌러 앉자 날 고향 친구처럼 친절하게 대해주었다. 그녀와 술을 마시면 안주를 가져다주기도 하고 영어로 농담을 걸기도 했다. 알량한 쪽방은 일종의 신방이 되었다. 거기서 우리는 서로의 생일날 초를 켜고 케잌을 잘랐다. 우리는 오랫동안 키스하곤 했다. 키스하는 남녀를 표현한 동상처럼 서로의 혀를 물고 가만히 있곤 했다. 코에서, 입에서 나는 에탄올 비슷한 양주 냄새를 교환했다. 우리는 서로의 이야기를 했다.


내 인생은 별 것 없었다. 서울에서 나고 자라다가 집안이 공중 분해되고, 신용불량자가 된 아버지와 어머니는 지방으로 숨었다. 나는 장기 휴학 상태였다. 술자리에서 인생 강의를 펼치던 선배를 팬 적이 있었는데 휴학과는 상관 없었다. 뭐 상당히 뻔한 인생이었다. 어디 가서 고생 좀 해봤다고 유세 부릴 만한 건수는 없었다.


그녀도 영세한 윤락업소를 굴리는 여자로서는 평이한 삶을 살았다. 아버지는 건설 현장 막노동꾼이었고 지독한 술꾼이었다. 술이 노동력을 갉아 먹자 무기력하고 폭력적인 인간이 되었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일 년 쯤 후 이번에는 어머니가 그녀를 놔두고 사라졌다. 그녀는 강원도 시골의 조부모 댁에서 자라게 되었다. 그리고 나이가 되자 시골을 뛰쳐나왔다. 목표지는 서울이었으나, 서울에 오는 도중에 취직을 해버렸기 때문에 서울 진출 계획은 수정되었다.


그녀가 처음 취직한 곳은 다방이었는데, 다방에서는 그녀 정도의 나이와 용모로 커피 배달을 시키기에는 아깝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그녀를 중년 아저씨들이 아닌 미군을 상대로 장사하는 업소에 팔았다. 팔렸다고 해서 강제로 마구 끌려간 것은 아니고, 자의 반 타의 반 넘어갔다고 했다. 처음 조부모를 떠날 때 몸을 팔 계획은 전혀 없었지만, 막상 그 세계에 포함되고 나자 어느새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 되었다고 했다.


물어봤다. 시골의 무엇이 문제가 있었기에 도망쳐야 했냐고. 아무 문제도 없었다고 했다. 조부모는 그녀를 잘 대해주었다. 지독하게 가난했고 논밭은 농부라고 불리기도 어색할 만큼 작았지만 굶지는 않았다고 했다.

“아무것도 없어.”

그 게 이유였다. 또래도 없고, 즐거운 일도 슬픈 일도 없고, 중학교를 졸업하고 나서는 학교도 없고(그녀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지 않았다), 소음도 없고, 나쁜 사람도 영웅도 사랑을 바칠 만한 남자도 없었다. 정말이지 아무 것도 없어서 거기서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혼자 나와서 좋은 걸 찾았느냐고 물었다. 그녀는 결국 날 찾았으니 됐다고 말했다. 그녀는 날 언제나 칭찬하려고 했다. 언젠가 섹스를 마친 후 그녀는 내 팔을 베고는 이렇게 말했다.

“미군 같아.”

나는 그게 무슨 뜻인지 시간이 조금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됐다. 내 존슨이 크다는 뜻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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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를 생각하면 반사적으로 떠오르는 몇 개의 이미지가 있다. 그 중 하나가 가터벨트 스타킹이다. 본인의 취향인지, 미군들의 취향인지 그녀는 자주 가터벨트 스타킹을 입었다. 물론 요즘 스타킹은 옛날처럼 흘러내리는 재질이 아니기 때문에, 가터벨트는 기능이 아니라 패션일 뿐이었다.


딱히 가터벨트 스타킹을 좋아한 적은 없지만, 그날은 그녀의 스타킹을 벗기지 않았다. 팬티와, 팬티와 스타킹을 연결하는 끈과 고리만 벗겼다. 가터벨트 스타킹은 사라지고 스타킹만 남은 셈이다. 스타킹의 그물망 사이로 핑크색 패디큐어가 언뜻언뜻 비쳤다. 그녀가 절정에 오를 때 나는 그녀의 발가락을 입에 물었다. 까끌까끌한 합성 섬유 사이로 혀를 밀어 넣었다. 그녀는 오르가즘의 문턱에서도 몹시 곤란해 했다.


하지 마, 더러워.

씻지 않은 발이 창피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곧 오르가즘에 몸을 떨었다. 그럴 때 두 다리로 내 허리를 조이는 힘이 상당해서, 나는 어쩐지 가슴이 벅차오르곤 했다. 절정이 지나간 후 그녀는 가쁜 숨을 고르며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았다. 다음 사이클을 기다리는 그녀의 습관이었다. 나는 아직 사정하지 않았으므로, 다시 천천히 그녀를 고조시키다가 속도를 높여 꼭대기로 보낼 차례였다.


하지만 삽입되어 있던 몸을 뺐다. 불을 켜고 그녀의 다리를 벌렸다. 축축해진 음모를 쓸어 올렸다. 나는 간혹 물끄러미 그녀의 다리 사이를 보곤 했는데, 그럴 때마다 그녀는 쑥스러워서 제 무릎이나 팔에 얼굴을 파 묻었다. 그때도 그랬다. 나는 손가락을 넣기도 하고 두 손으로 그 빨간 속살을 활짝 벌리기도 했다. 나 봐봐. 그녀의 표정을 보고 싶었다. 안 돼. 안 되는 게 어딨어. 그녀는 나를 마주 보았다. 붉어진 얼굴을 쓰다듬었다. 그녀를 더 확실하게 갖고 싶었다.


일어나 앉으라고 했다. 그리고 스타킹의 레이스, 가터벨트 고리가 걸려있던 그 레이스를 혀로 핥으라고 했다. 그녀는 순순히 따랐다. 고개를 숙여 제 몸을 핥는 고양이처럼 무작정 레이스를 핥았다. 나는 그녀의 빨갛고 작은 혀끝과 침에 젖어 번들거리는 레이스를 보며 음모를 헤치고 중지와 약지를 밀어 넣고 주름진 벽을 훑었다.


한참 후 그녀는 내 눈치를 보다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 그만해도 돼? 아직이라고 했다. 그녀는 시키는 대로 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는 모르겠다. 나는 일어났다. 자신의 허벅지에게 하던 것을 내 몸에 하라고 했다. 그녀는 천천히, 그러나 집중해서 펠라치오를 했다. 손은 쓰지 말라고 했다. 그녀는 그렇게 했다. 그녀는 두 손으로 내 엉덩이 바로 밑 허벅지를 단단히 쥐었다. 나는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마스카라로 한껏 세운 속눈썹과 얇은 콧날 그리고 내 음모와, 존슨과, 고환과, 사타구니를 오가는 빨간 혀가 보였다.


그녀는 한 번씩 시선을 올려 내 눈치를 살폈다. 그 결에 눈이 몇 번 마주쳤다. 그러면 그녀는 부끄러운지 잽싸게 시선을 내렸다. 사정 직전이 되었을 때 그녀는 내 항문에 손가락을 밀어 넣었다. 경직된 존슨이 마비되는 듯 했다. 눈을 감았다. 그 결에 조금씩 몇 번에 걸쳐 천천히 사정 했다. 그녀가 꼴깍, 정액을 삼키는 소리를 1-2초 사이로 몇 번 들었다. 그녀가 손가락을 빼자 남은 정액이 터진 둑 사이로 물 쏟아지듯 흘러 나왔다. 그녀는 그것을 모두 삼켰다.


그날 느낀 감정을 한 마디로 설명하기란 불가능하다. 하지만 굳이 압축하자면 그건 안도감이었다. 이 여자는 내 여자다. 그런 확신이 생겼다. 실제로 그랬다. 그녀는 내 것이었다. 그렇다면 나는 그녀의 것이었을까? 난 아직 모르겠다.

우리는 사랑한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나는 내가 그녀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여기서 내 부끄러움을 모두 고백해야겠다. 나는 내가 그녀를 착취할 권리가 생겼다고 믿었다. 기둥서방이 되는 건 한 번 쯤 해 볼 만한 자랑거리라고 믿었다. 그녀의 삶이 나의 나태와 성욕, 도피를 위해 존재한다고 믿었다. 그녀도 그렇게 동의했다고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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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내 다리 사이에 발을 밀어 넣곤 했다. 나는 아끼고 탐했던 그녀의 배꼽에 소금을 바르고 레몬 즙을 쳐서 양주 안주로 핥곤 했다. 그녀는 섹스를 마친 후 내가 마당에 나가면 잠시 후 쫓아 나와 등목을 해주곤 했다. 나는 그녀가 씻고 나오면 몸에 맺힌 물방울을 받아 마시곤 했다. 세상과 분리된 비밀의 정원에 살고 있는 듯 했다.


우리는 외로운 종자들이었다. 그래서 역시 외로운 서로에게 의지했다. 우리는 쪽방에서 세상을 가졌다. 거기서 우주를 지배했다. 그곳은 궁궐이었다. 혼자서는 아무것도 아니었던 우리는 황제와 황후였다.


좋았다. 나는 그 생활을 사랑했다. 우리는 계곡에 가서 물놀이를 했다. 맨발에 흙을 묻히며 그녀를 업고 몇 백 미터를 걸었다. 행복한 날이었다. 우리는 그날도 취했다. 짝집 바깥의 시간이 멈춘 양 69자세로 하염 없이 서로의 성기를 탐했다. 그 밤 그녀가 절정에 오를 때, 그녀는 날 끌어안으며 신음 섞인 목소리를 내 뱄었다. 떠나지 마.


떠나지 마... 제어하지 못한 어떤 것이 규칙을 뚫고 몸을 드러냈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 역시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찬 바람 한 줄기가 우리의 등골을 타고 지나쳐갔음을 나는 기억한다. 그 때가 우리 관계의 가을이었다. 절정을 찍은 관계는 서서히 내리막길을 타기 시작했다.


관계는 그 후로도 오랫동안 계속됐지만 어느 순간부터 이별은 정해진 스케줄이 되어 있었다. 헤어지던 날, 그녀는 드디어 말했다.

사랑해.

나는 침묵했다.

나는 그 말에 올바른 대답을 했어야 했다.
나는 나에 대한 그녀의 사랑에 최소한의 예의를 보였어야 했다.

그러나 나는 시간을 돌이킬 수 없다. 십여 년 전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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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토바이를 타고 서울에 돌아왔다. 흩어졌던 가족들이 다시 모였다. 대학에 복학했다. 그리고...


그리고 나는, 이 글을 읽는 누구에게나 기둥서방이었음을 술친구들 앞에서 자랑인 양 떠벌렸던 나를 저주하고 혐오할 기회를 드리고 싶다. 심지어 나는 움베르토 에코의 책을 그녀에게 선물해주고 이해가 되지 않는 대목을 질문해주길 기다렸었다. 그녀의 생각보다 잘난 남자라는 걸 증명하기 위해.


나는 죄인이다. 그녀에게 죄인이라는 뜻이 아니다. 나는 내 자신에게, 내가 보낸 시간에 죄를 지었다. 나는 내 자신을 기만했다. 나는 잘못된 믿음으로 스스로를 방치했다. 내 자신을 나로부터 소외시켰다.


며칠 전 그녀 생각이 났다. 그녀의 얼굴이 내내 떠올라 사라지지 않았다. 내 기억은 그 시간 속으로 빨려 들어가 헤엄쳤다. 물 밖에 나오자 적막한 상실감에 가슴이 아려 숨결이 끊겼다. 침대에 쳐박혀 울고 또 울었다. 그리고 나는 깨달았다.


난 그녀를 사랑했다.
진심으로, 깊게 사랑했다.


나는 내가 그녀를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래서 그녀와 함께한 순간에 더 치열하게 사랑하지 못했다. 서방질하면서 돈 한 푼 벌어다 주지 못한 건 부끄럽지 않다. 사람을 사랑할 자세가 되어 있지 못한 사람이었다는 게 부끄럽다.


나는 사랑에 실패했다. 사랑에 적극적으로 도전했다가 겪은 실패보다 더 처참한 실패다. 나는 도전조차 하지 못했다. 나는 내가 도피한 아지트 속의 여주인공으로 그녀를 대했다. 그녀를 내 삶 깊숙한 곳에 끌어들이지 못했다. 내게 그녀는 도피처였지만, 그녀에게 나는 삶의 현장이었다.


나는 링에서 쓰러지지 못했다. 사랑의 링에 올라서지 못하고 기권했다. 나는 도망자다. 무자격자다. 이 글을 쓰는 지금 너무나 아프다. 왜 이 나이를 쳐먹고 난 후에야 내 안의 비겁함을 똑바로 바라볼 수 있는 걸까. 그녀가 당당한 어른이었음을, 나는 그 어른스러움에 기생하면서 생채기를 낸 철없는 아이였음을 나는 비로소 안다.


어리석었던 과거가 파도처럼 오늘도 내 마음을 덮친다. 이곳에서라도 외치고 싶다. 난 널 사랑했다고. 그리고 날 사랑해줘서 고마웠다고. 언제까지고 잊지 못할 거라고.

...................................................................


원문은 여기에


http://www.ddanzi.com/index.php?mid=ddanziDoctu&category=977718&sort_index=voted_count&order_type=desc&page=1&document_srl=1065371



난 머 그러네...

구성애 아짐처럼 위생적 딸딸이를 갈키는거만이 무신 성교육의
다는 아니라봄 그런면에서 진정한 사랑까진 몰라도


적어도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게 죄가 아니듯

`사랑의 태도`에 대한 이만한 고퀼의 고찰 글을 찾기 힘들달까


자라는 애덜에게 진짜 세상의 날것을 뵈주는게 진정한 교육은 아닐까

힐링? 족구나 하라지...애덜아 위 아 더 월드 따윈 없단다란걸...


이처럼 알흠다운 독백으로 써내려 갈 수 있다니 저자에게 캄솨한다



중간중간 다소 야한(?)대목은 야하다기 보단(솔까 클릭질 몇번임 이보다
훨 야한 야설 넘치는 세상)한편의 아름다운 시처럼 들렸다눈


막말로 뉴라이트 교과서 애덜에게 읽히느니 이런 글 한편 자라는 애덜에게
읽히는게 백만배는 더 낫다는게 내 생각임


머 언제나 그렇듯 아님말구


아! 글구 이 오롯이 아름다운 문학작품에 대한
꼰대 태클은 정중히 사양하거뜸



*이 글은 어쩜 경험담이 아닌 소설일지도 모른단 생각이 1그람 들었으나
머 그럼 어떤가 소설이라 치더라도 기성 작가 나부랭이들의
자기연민과 자기연민 과잉쩌는 허서 글 보단 내 맘엔 훨 청량하게 읽혔으니 머

하하하하하

뿅~





2014년 1월 21일 화요일

윤여준의 새정치

어제 자기 전 윤여준에 대한 썰을 몇자 씨부릴까 혔어 근데

글을 쓰다 문득, 가만!

이거 이거 결국 이 자슥들이 하자는게
그람 내각제 머 이런겨?? 이런 생각이 들더만

그래서 검색해 봤더니 헉~역시나 몇일 전 윤여준이 내각제 드립을
이미 쳤더만 아까비 이 글을 몇일만 빨리 썼어도 켁~

허긴 머 아주 놀라운건 아닌데 ㅎ


걍 걘적으로 요즘 잉여력이 안되 방송이나 기사를 촘 못 챙겨보다보니
내 딴엔 1그람 돋았다눈 그랴 걍 내가 벅수지 벅수  ㅋ



암튼 결론은 이미 나왔고...

그노무 새정치 머시기 암튼 그거이 실체는 결국 요는
초 씜쁠~하게 말하잠 내각제로 개헌하자 머 그런건데...


여기서 딜레마가 있지비 ㅎ


내각제에 대한 울나라 사람들의 부정적인 인식 중


첫째는 니뽕 꼬라지를 함 봐라 저 쉑들 천년만년 지들끼리
애비가 뒈지믄 자식이 이어받고 또 그 자식이 뒈짐 심지어
며느리까지 이어 받는 그런 공고한 질서가 더욱 굳어질거란 인식


머 그건 글치...근데 솔까 내각제 안한다고 그런 폐해가 없나?
글잔여 함 보자구 대표적으로 울 여왕폐하...^^


애비가 여대생들 옆구리에 차고 시바스대갈 쳐마시다
부하한테 총명탕 쳐묵하고 뒈지니까...몇십년뒤에 어맛!
그 딸이 또 이어서 결국엔 대통까지 해쳐묵잔여 벩두혈통 못지않치 머 ㅋ


꼭 여왕마마 아니더라도 울정치에 봄 대를 이어가 아니라
아주 3대째 해묵고 있는 민주당 정씨3대 나 그외 여야에
숱하게 많은 정치인들이 대통령제인 현행 시스템 하에서도 얼마든지
부와 명예를 세습하고 있단걸 알수가 있지 삼숑은 머 논외로 치더라두말이지



두번째는...내각제는 JP의 숙원이었기땀시 싫다


오올~글치 허긴 머 나두 찜찜혀 그랴 그 맘 다 안다눈 ㅎ

근데 그 당시와 현실은 많이 달라졌고 여전히 머 지금도 존필이는
내각제드립을 치고 있지만 막말로 시방 나우 당장 내각제 해도
존필이가 총리 해쳐묵을 일은 없으니 이건 머 걱정 안해도 ㅎ


물론 내각제를 원하는 여당 내 정치인들이 여전하고 그들이
왜 내각제를 환영하는지는 굳이 입 아프게 말 안해두 나두 암


근데 정치는 역동적인 거고
환경과 조건이 바뀌면 상황 자체가 다시 세팅되야 되는거잔여



고로 JP가 주장했으니 난 무조건 반댈세?

그람 똑같은 주장을 만약 안철수나 문재인이 한다면?

그래도 무조건 반대할거삼? 아니잔여 ㅎㅎ


그러니 누가 언제 어떤 상황에서 내각제 드립을 치느냐
이건 그야말로 그때그때 즌혀 다른 문제인거심


다음~


세번째 문제


현행 87체제(직선제 개헌)가 출범하게 된 그 근본 열망은
울 나라처럼 기득권이 공고한 나라일수록 대통령이라도 바꿔서
1그람이라도 그 균형추를 맞춰야 한단 그런 바램들이 있었던거지



근데 함 보자구 87체제 이후 근~30여년이 흘렀는데 대통령 직선제
아래서 저 공고한 질서가 무너졌나?? 아니 무너지기까진 안바래두
최소한 지역구도...그거라도 혁파 됐나? 현실은 머 다들 알다시피 ㅠ



해서 이젠 역발상을 할때도 되었단거지


함 생각들을 해보삼


우덜은 지난 총대선에서 2연빵으로 졌어
게다가 다가올 지방선거도 내 보기엔 쉽지않어
지난 2010년 지방선거만큼 선방하긴 꽤나 힘들껴
이건 머 다들 동감하지? ㅎ



그리고 다가올 보궐선거...앤드 몇년뒤 총대선...


이때 반드시 우덜이 이길거다?? 글쎄...


낙관적으로 보는건 좋은데 냉정히 말해서
지금 당장 현실을 함 보자구 박근혜가 막말로 그 염병 지랄을
떨고 개 오만함을 비춰도 이노무 지지율은 요지부동이여



국민이 븅이다? 글쎄...언젠 머 안그랬나만 그러다
우덜이 함 이기믄 다시 역시 국민은 위대하니 어쩌니 함서
눈물 콧물 짜고 징징댈거 잔여 그치(아...아니 머 나두 포함 ㅋ)



여튼


지금 당장 박원순 지지율이 아무리 높다한들...

당장 임박한 지방선거도 안철수 신당이 뜨면 그야말로
한치앞도 내다볼수 없는 난전이 되듯..


당장 박원순이니 안철수니 문재인이니 혹은 안희정이니


머 당장 기세로 보잠 정권탈환은 따논 당상 같것지만 그게 또
글케 만만한 일이 아니란거지 난중에 봄 알것지만 저쫙에서
여당후보로 유엔사무총장 출신 반기문이 나온다면?



먄~한 말씀이지만 박원순이 아니라 그보다 더 강한 후보가 나와도
반기문을 이기기가 꽤나 힘들껴 고로 냉험한 현실을 보잠
우덜의 다음 대선도 장밋빛이 아니란거지(젥일...나두 짜증이 나네 쩝)



근데 머 우짜것어 이게 말 그대로 `냉정한 현실`인걸



그래서 어제 그 기사(윤여준의 내각제 드립)을 보고
몇몇 기사를 더 찾아봤는데 게중에 내 고민과 꽤 맞아 떨어지는
그런 글을 쓴 양반이 있더라구 머 다들 아시것지만



88만원세대로 유명한 우석훈 아젠데...ㅎ
꽤나 타당한 주장이라 생각하기에 다들 일독을 추천함요


http://media.daum.net/editorial/column/newsview?newsid=20140113221610527



오올~그러네...


아까 첫번째 문제로 언급했던 니뽕의 내각제...

생각해봄 우덜은 꼭 어떤 문제를 볼때 지나치게 주변문제로
국한시켜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사실 좀 더 넓게 확장해서 봄
니뽕처럼 존망케이스만 있는건 아니잔여 독일두 글쿠 그외
유럽에 많은 국가에서 내각제를 꽤나 성공적으로 안착시켜서
다들 머 잘들 하고 있잔여



꼭 안좋은 면만 부각할라침...

막말로 벤츠나 람보르기니도 흠 잡을라침 다 있듯
세상에 완전무결한 무오류의 정치체제나 정치인은 읍따~란게
상식이잔여



고로


난 내각제에 대해 우덜이 함 진지하게 생각해볼 시점이 오지않았나
그런 생각을 혀



물론 아쉬운 점은 개헌논의(현재 여당의 스탠스는 머 4년중임제 정도지만)
가 단지 4년중임제 정도에만 국한 되거나 것두 주로 여당에서 선도적으로
제기 되고 있다는게 아쉽지만...


촘 더 판을 흔들람 아예 내각제 정도로 정치판을 근간부터
흔들 필요도 있다고 봐



아! 당근 여기엔 전제가 따르지


기존에 이른바 진보정당이 그토록 목터지게 주장했던...


그 독일식 정당명부제



이게 받아들여진다....머 그런 상황이람 난 얼마든지
내각제 카드를 받을만하다 그런 입장임 나로선 조낸 콜~ㅎㅎ



정리하잠(이런 막글이 정리가 되것냐 퍽~^^;)



머 이런겨



우덜이 원하든 안하든 어차피 개헌논의는 향후 정국을 주도할거고
4년중임제와 내각제....이 둘 중 난 굳이 받아야한담

차라리 독일식 정당 명부제가 받아들여진단 전제하에 내각제에 베팅~
해볼만하다 머 그런거심


물론 내각제로 기존 질서가 더욱 공고해지고 저들 기득권층이 더 바라는거다
머 이런 반론도 있을수 있는데 역으로 내각제 아닌 현 시스템하에서
대통이 이명박,박근혜야...게다가 난중에 더 한 넘이 나오지 마란법이 어딨어


고로 대통령제론(설령 우덜이 잡은다 한들 지난 십년의 집권을 통해 봤듯)
이 사회를 근본적으로 개혁해 나가긴 한계가 있단거지



그럼 우회(?)루트를 찾아볼 필요도 있다 이거임


일테믄 현 정국의 가장 큰 문제는 정치(각 정당간)의 실종이고
의회는 무력화 된채 청와대(행정부의 독주)가 아도치는 형국인데


함 생각들 혀봐


정치의 복원 이거 별루 어렵게 생각할 필요도 없이 가까운 철도껀을
생각해봐 강대강 파국으로 치닫던걸 어찌됬든 여야가 만나 협상을
통해 먼가 백퍼 만족은 아니어두 그래두 머라도 맹글어 내잔여



이게 바로 정치지 머여


원래 여 야 는 일케 해야 정상인거잔여
고로 정치의 복원은 현 대통령이 똘아이인 상태서 여당이 뒤를 받쳐주는
거수기로 전락하는 이런 시츄에선 당최 회복이 불가하단 거지
다들 내시라 눈치만 보는데 무슨 야당과 대화가 되것어



그런 측면에서 내각제 하에서람(안철수 신당과 문재인의 민주당이
연정으로 집권했거나 혹은 그 중 한당이라도 여당과 연립정부라면)
지금처럼 귀막고 협상 없이 독주하거나 특히 민주노총을 쳐들어가서
깽판 놓는 그런 일은 감히 못한단 거지 바로 의회해산이지 머



여기서 가장 중요한건 바로 소통문제...


우덜이 기존 5년 대통령제에서 가장 한계로 느끼는게
이른바 중간평가가 불가능하단거 일례로 지난 촛불이나 최근만해도
절케 부정선거를 저지르고도 벽아일체로 나올때 그때 가장
절실한게 소통문제잔여



그 소통에 있어서 내각제는 그야말로 지지율 변동에 가장
민감할수 밖에 없고 고로 여차하면 권력을 얼마든지 뒤엎거나
할수 있는 구조가 난 되려 한국적 상황에선 더 역동적으로 가능하다봄


내각제? 이원집정부제? 머 얼마든지 논의해볼 필요가 있다 이거지
난 머 콩~(콜~의 오타 아님  코..콩렐루야~윙? ㅋ)



하나 더...


왜 내각제(혹은 이원집정부제)냐..


난 되려 울 정치에서 이른바 진보라 부르는 집단(크고 넓게 보자구
자꾸 어떤 횽들은 순결한 2프로만 진보라 칠라구라는데 그람 안돼
외연을 확장해도 부족한대 왜자꾸 무한으로 수렴할라하냔거지)에 대한


난 보다 낙관적이고 굳건한 믿음이 있어


물론 그 내부에 치고 들어감 일마들이 진보가 맞네 아니네부터
어쩌구 저쩌구 문제투성이지만 그래도 그런 민주,정의,신당,노동당 머
하튼 이런 정당들이 자꾸 자꾸 의회로 들어가서 한땀한땀 그 노력이
쌓이다보면 우덜의 외연뿐 아니라 그 뿌리가 더욱 굳건해질거란 믿음


다시말해


오세훈의 서울보단 박원순의 서울이 백배천배 낫듯
뉴라이트의 교육보단 김상곤의 교육이 울 아이들의 미래에
훨씬 나을거란 굳건한 믿음이 있어 횽들두 글찬여 그치~


불과 몇년전까지 아무도 몰랐던 노회찬,심상정 같은 정치인도
여기서 그치는게 아니라 자꾸 자꾸 발굴해서 더 많이 의회에
집어 넣을수 있담 난 장기적인 진지전(?)차원에서 내각제도
충분히 매력적이라 생각한단거여


더이상

노무현과 같은 수퍼 히어로 역대급 정치인은
아마도 다시 나오긴 힘들껴...게다가 그 노무현 마저도
한계를 느낀 기존 질서의 벽이란거지 그 벽을 한방에 깰수도 없고


결국은 그 벽을 우덜의 담쟁이 넝쿨이 타고 넘든 아님 정 안됨
우덜의 힘을 모아모아 벽을 깨든 해야지 일 개인 정치인에 기대는
지금의 형태론 우린...다음도 그 다음도 아마 벽에 부딪쳐 막히고 말거란거지



*근데 먼노무 결론이 일케 길어 큽~



인자 진짜 마지막 ㅎㅎ


여기서...중요한건 안철수 신당의 실체=내각제
머 일케만 바라본담 그건 또 아니란거지(머래? ㅋ)


절마들이 추구하는 이른바 새정치는...어제 원래
내가 쓸라고 했던 주제로 다시 돌아가는데 ㅋ
안철수 생각이고 머고 그딴건 중요하지도 않고


정말 주목해서 봐야할건 이성계가 아니라 정도전이듯(윙? ㅋ)


안철수가 아닌 윤여준의 생각이 곧 새정치고 그들의 방향성이
될거란거임 고로 윤여준이 상당부분 아이디어를 차용했다 보여지는
(이건 머 내 걘적 생각임 ㅎ) 오자와 이치로의 `일본 개조 계획`의


한국판...이 바로바로 `안철수의 새정치` 그 실체가 되시것...^^



즉 그들은 단지 내각제만이 아닌 한국정치 체제 전반을 뒤엎고
새로 짜고 자 하는 나름 거대한 계획하에 이번 지방선거에 나온거심
(지방선거에서 그 욕을 쳐묵할게 뻔한데도 17개 전부에 후보를 내겠다는
이유가 바로 이것임 그들은 바로 여기까질 보고 두는 수임)



그런면에서 난 일부 여론에서처럼 윤여준을 책사니 머니 글케
부르기보단 일종의 `몽상가`라 부르고 싶음 ㅎ



근데 원레 정치란게 그런 되도 않을거 같은 몽상에서부터
먼가 혁신적인게 나오는 그런거라눈 아...아님말구 ㅋ


왜 그런 시가 있잔나


``이룩할 수 없는 꿈을 꾸고,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하고,싸워 이길 수 없는 적과
맞서 싸우고, 견딜 수 없는 고통을 견디며, 잡을 수 없는 저 하늘의 별을 잡자``


ㅎㅎ

물론 윤여준이 군사정권의 주구였고 늙은 여우란건 나두 아는데 어떤 사람의 행동을 모두 다
악의로 보기 시작함 인생이 참 피곤해짐 거 왜 듁을때가 됨 바른 말을 한다잔나 어디 함 보자구
난 그 의도가 어쩌든 현행 질서를 흔들 수 있는 파열음이람 거기에 주목해보는것두 나쁘지않다 이거임

일테믄 `전복적 상상력`이 필요한 시점이 아닌가 넘 한계선을 우덜 스스로 긋진 말자 머 그런...

이상 내가 써놓고도 참 먼말인지 모를 잡솔을 이만...켁~











2014년 1월 20일 월요일

윤여준과 오자와 이치로

먼가 부제를 윤여준과 오자와 한일양국 책사의 생애 마지막 대 실험(?)
머 이런 거창한 주제로 시작해보려 했으나 좁밥인 내게 가능할리가 ㅋ


걍 흔하디 흔한 안철수 야그지 머 ㅎㅎ


오늘 보니 또 안철수가 한마디 했더만...머 그건 잠시 접고...ㅎ


아! 그전에 내가 안철수와 윤여준이 다시 재결합(?)할거라 예측했던
글이 있는데 함 다시 읽어보니 역시 난 돗자리를 깔아야할듯 캬캬캬


http://www.ddanzi.com/index.php?mid=ddanziDoctu&search_target=nick_name&search_keyword=%EB%8D%B0%EB%8B%88%ED%81%AC%EB%A0%88%EC%9D%B8&page=9&document_srl=809533


넝담이고 그들은 실제적으론 결별한적이 없었다 보는게 더 정확하단거다
이게 내 요지임 아..아님말구 ㅎ


잡솔은 이만 각설하고...^^


안철수와 윤여준...그들이 말하는 이른바 `새정치`에 대한 생각을 하다보니


문득 떠오른 인물이 있는데 그는 바로...




오자와 이치로


뉴규?? 냐구? ㅎㅎ



촘 쌩뚱맞긴한가 ㅎ


오자와는 요샌 머 주가가 영 존망이긴한데...ㅎ


몇년전까진 일본 정치의 막후 실력자로 불리던...머 그런 잉간임
(자세한건 구글신께 ㅎ 요 잉간이 또 꽤나 흥미로운 잉간이긴함)



안철수,윤여준이 주장하는 새정치...더 정확히는

윤여준이 구상하는(머지? 이 정도전 돋는 윤여준이라니  ㅋ)



이른바 새로운 대한민국 어쩌구...더 정확히는 윤여준은
`한국 정치 구조 변동` 이란 표현을 씀



이 표현을 곰곰히 곱씹다보니 떠오른게 바로 오자와의 이른바

`일본 개조 개획`인데...(먼가 1그람 돋지 않나들 ㅋ)



머 이런저런거 다 빼고 내가 흥미롭게 생각한 대목은

일본 개조 개획 중  특히 국회 개혁에 대한 부분...


*일본 정치는 관료중심이다 보니 관료중심을 혁파하는것에
제 일 방점을 찍고 있슴 근데 재밌는건 그 상징으로 바로
국회에 대한 대목임 관료의 국회 답변 금지 등


인데 난 작년 안철수의 국회의원 수 축소 드립도 상당부분
이 오자와에게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봄 그 이유는...




어! 잠시만...